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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부모 따라 고무 공장서 일하는 태국 산간 마을 아이들

  • 작성일 2024-07-08

 

컴패션 후원 어린이 출신인 태국컴패션 어린이센터 교사인 마노프.
자신의 어릴 때 사진을 보여주며 멀리에서 온 컴패션 후원자들을 시종일관 친근하게 대했다. [사진 허호]

 

 

나무를 깎아 가구나 주방용품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일상용품에 눈길이 갑니다. 유리, 종이, 플라스틱, 고무 등이죠. 그 안에 담겨 있는 인류사에 끼친 영향까지 알게 되면 이 작은 물건에 담긴 수많은 의미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는 것이지요.

 

2015년 태국의 치앙마이 산간지방에 한 컴패션 어린이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카렌족 어린이들이 주로 양육 받고 있었는데, 여느 어린이센터와 같이 어린이들이 밝고 씩씩하게 크고 자라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요. 어린이를 돌보며 기쁜 얼굴로 저희를 맞아준 교사 세 명은 자신이 컴패션 후원 어린이 출신이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어린 시절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그런 선생님을 친근하게 대하면서도 선망의 눈빛을 보내고는 했지요. 그중 한 명인 마노프는 유난히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어 사진을 찍었죠. 그렇게 놀고 있었는데, 인근에 천연고무 농장이 있다고 해, 호기심이 들어가 보자고 했습니다. 가깝다고 하더니 차를 타고 몇 시간 가는 거리에 있더군요.

 

 

2015년 방문한 태국 북부 치앙마이의 한 산간 지방의 천연고무 원자재 공장.
나중에 알고 보니 태국은 세계적인 천연고무 생산국이라고. 농사만 지어야 하는 산간에서는
이러한 부수입이 가능한 고무 농장은 각 가정의 생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사진 허호]

 

 

고무는 원래 브라질의 아마존 유역에서만 발견되던 나무에서 채취되었다고 합니다. 18세기 후반 식민지 시대 유럽인들은 브라질 원주민 아이들이 모여 공놀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몰캉몰캉하고 둥근 것을 갖고 노는데 강하고 탄력이 있었습니다. 천연고무의 발견이었죠. 이것을 유럽에 가져와 생활 이곳저곳에 사용하다 보니 정말 쓸 데가 많았겠죠. 아마존 밀림에서 나오는 고무 유액은 양이 한정되었을 수밖에 없었고, 유럽의 수요를 다 채우지 못해 가격이 올라가면서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천연고무의 전 세계 사용량의 상당량이 태국의 숲에서 나온다고 한다.
나무에 상처를 내면 나무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수액을 발생하는데 사람이 홀랑 모아가는 거다.
나무에 소중한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 되었다. [사진 허호]

 

 

영국인 헨리 위컴이라는 무역상이 반출이 금지된 고무나무 종자를 몰래 가지고 나와 영국 왕립연구소에 전달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처음 들여온 조선시대 문익점과 비슷한 셈이지요. 고무 유액은 고무나무 종류에 따라 그 성질이나 양이 달랐는데, 영국은 이중 품종이 좋은 것을 선별해 아시아에 퍼져 있는 자국 식민국에 심었는데, 현재 아시아가 라텍스며 천연고무 생산지가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또 고무 제품이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중 1차 세계대전이 터집니다. 전쟁을 시작한 독일은 바다가 없었기 때문에 브라질로부터 고무를 수입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합성고무를 만들어냅니다. 전쟁으로 인해 고무는 더욱 우리 생활에 파고들었습니다.

 

트렌치코트의 예를 들어볼까요. 1차 세계 대전 때는 참호전이 많았는데, 비가 오면 병사들이 힘들어졌습니다. 영국의 한 업자가 천과 천 사이에 고무를 넣고 압착을 시켜 방수 코트를 만들었습니다. 이 레인코트의 품질을 발전시킨 사람이 바로 토마스 버버리였고, 일명 트렌치코트로 유명해졌지요. 고무는 2차 세계 대전에 일본이 미얀마 등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엄마를 따라온 여자아이가 자기도 돕겠다고 천연고무 재료를 들춰보고 있다.
기초재료를 생산하는 거니까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과정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가죽처럼 반질반질한 고무 원자재가 얼마나 많은 손길이 스쳐 지나갔는지 느껴졌다. [사진 허호]

 

 

2015년 방문한 태국의 고무 공장은 근처에 대여섯 채의 집은 공장 관리자의 집을 둔 채 덩그러니 공장만 지어진 모습이었습니다. 제법 큰 규모였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집은 산속 여기저기 콕콕 박혀 있었죠. 이른 아침이면 이들이 하나둘 모여 각자의 역할에 맞춰 천연고무의 원재료를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짓고 먹고 사는 이들에게는 고무 공장이 매우 큰 수입원일 것입니다. 그걸 반증하듯 남편과 아내, 아이들까지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도 종종 보았습니다. 이들의 순박한 표정은 밝았고 열의에 차 있었죠.

 

오랜만에 연필을 들어 끄적이다 지우개를 들으며 당시를 떠올려봅니다. 지우개 역시 영국이 생활용품으로 만들어낸 초기 제품이었죠. 이 작은 고무가 수많은 노동과 역사의 흔적을 감춘 채 내 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습니다. 산속 오지에서 엄마를 따라 종종거리며 조막만 한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던 여자아이는 이제 많이 컸겠지요. 이 작은 고무가 한국에 있는 저에게 멀고 먼 태국의 한 어린이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식민지 역사니, 세계대전이니 이런 이야기보다는, 훨씬 생생하고 가깝습니다. 그 고무 농장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겠죠.

 

 

 

 

 

 

▼원문 바로보기(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부모 따라 고무 공장서 일하는 태국 산간 마을 아이들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컴패션 후원 어린이 출신인 태국컴패션 어린이센터 교사인 마노프. 자신의 어릴 때 사진을 보여주며 멀리에서 온 컴패션 후원자들을 시종일관 친근하게 대했다. [사진 허호]

 

나무를 깎아 가구나 주방용품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일상용품에 눈길이 갑니다. 유리, 종이, 플라스틱, 고무 등이죠. 그 안에 담겨 있는 인류사에 끼친 영향까지 알게 되면 이 작은 물건에 담긴 수많은 의미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는 것이지요.

 

2015년 태국의 치앙마이 산간지방에 한 컴패션 어린이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카렌족 어린이들이 주로 양육 받고 있었는데, 여느 어린이센터와 같이 어린이들이 밝고 씩씩하게 크고 자라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요. 어린이를 돌보며 기쁜 얼굴로 저희를 맞아준 교사 세 명은 자신이 컴패션 후원 어린이 출신이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어린 시절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그런 선생님을 친근하게 대하면서도 선망의 눈빛을 보내고는 했지요. 그중 한 명인 마노프는 유난히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어 사진을 찍었죠. 그렇게 놀고 있었는데, 인근에 천연고무 농장이 있다고 해, 호기심이 들어가 보자고 했습니다. 가깝다고 하더니 차를 타고 몇 시간 가는 거리에 있더군요.

 

 

2015년 방문한 태국 북부 치앙마이의 한 산간 지방의 천연고무 원자재 공장. 나중에 알고 보니 태국은 세계적인 천연고무 생산국이라고. 농사만 지어야 하는 산간에서는 이러한 부수입이 가능한 고무 농장은 각 가정의 생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사진 허호]

 

 

고무는 원래 브라질의 아마존 유역에서만 발견되던 나무에서 채취되었다고 합니다. 18세기 후반 식민지 시대 유럽인들은 브라질 원주민 아이들이 모여 공놀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몰캉몰캉하고 둥근 것을 갖고 노는데 강하고 탄력이 있었습니다. 천연고무의 발견이었죠. 이것을 유럽에 가져와 생활 이곳저곳에 사용하다 보니 정말 쓸 데가 많았겠죠. 아마존 밀림에서 나오는 고무 유액은 양이 한정되었을 수밖에 없었고, 유럽의 수요를 다 채우지 못해 가격이 올라가면서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천연고무의 전 세계 사용량의 상당량이 태국의 숲에서 나온다고 한다. 나무에 상처를 내면 나무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수액을 발생하는데 사람이 홀랑 모아가는 거다. 나무에 소중한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 되었다. [사진 허호]

 

 

영국인 헨리 위컴이라는 무역상이 반출이 금지된 고무나무 종자를 몰래 가지고 나와 영국 왕립연구소에 전달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처음 들여온 조선시대 문익점과 비슷한 셈이지요. 고무 유액은 고무나무 종류에 따라 그 성질이나 양이 달랐는데, 영국은 이중 품종이 좋은 것을 선별해 아시아에 퍼져 있는 자국 식민국에 심었는데, 현재 아시아가 라텍스며 천연고무 생산지가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또 고무 제품이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중 1차 세계대전이 터집니다. 전쟁을 시작한 독일은 바다가 없었기 때문에 브라질로부터 고무를 수입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합성고무를 만들어냅니다. 전쟁으로 인해 고무는 더욱 우리 생활에 파고들었습니다.

 

트렌치코트의 예를 들어볼까요. 1차 세계 대전 때는 참호전이 많았는데, 비가 오면 병사들이 힘들어졌습니다. 영국의 한 업자가 천과 천 사이에 고무를 넣고 압착을 시켜 방수 코트를 만들었습니다. 이 레인코트의 품질을 발전시킨 사람이 바로 토마스 버버리였고, 일명 트렌치코트로 유명해졌지요. 고무는 2차 세계 대전에 일본이 미얀마 등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엄마를 따라온 여자아이가 자기도 돕겠다고 천연고무 재료를 들춰보고 있다. 기초재료를 생산하는 거니까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과정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가죽처럼 반질반질한 고무 원자재가 얼마나 많은 손길이 스쳐 지나갔는지 느껴졌다. [사진 허호]

 

 

2015년 방문한 태국의 고무 공장은 근처에 대여섯 채의 집은 공장 관리자의 집을 둔 채 덩그러니 공장만 지어진 모습이었습니다. 제법 큰 규모였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집은 산속 여기저기 콕콕 박혀 있었죠. 이른 아침이면 이들이 하나둘 모여 각자의 역할에 맞춰 천연고무의 원재료를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짓고 먹고 사는 이들에게는 고무 공장이 매우 큰 수입원일 것입니다. 그걸 반증하듯 남편과 아내, 아이들까지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도 종종 보았습니다. 이들의 순박한 표정은 밝았고 열의에 차 있었죠.

 

오랜만에 연필을 들어 끄적이다 지우개를 들으며 당시를 떠올려봅니다. 지우개 역시 영국이 생활용품으로 만들어낸 초기 제품이었죠. 이 작은 고무가 수많은 노동과 역사의 흔적을 감춘 채 내 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습니다. 산속 오지에서 엄마를 따라 종종거리며 조막만 한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던 여자아이는 이제 많이 컸겠지요. 이 작은 고무가 한국에 있는 저에게 멀고 먼 태국의 한 어린이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식민지 역사니, 세계대전이니 이런 이야기보다는, 훨씬 생생하고 가깝습니다. 그 고무 농장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겠죠.

 

 

 

 

 

 

▼원문 바로보기(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부모 따라 고무 공장서 일하는 태국 산간 마을 아이들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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