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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손·발 뭉개졌어도…오드리 헵번보다 아름다운 한센병 엄마

  • 작성일 2024-12-09

태국 북부 산간지역 깊숙이 화전민 마을로 들어가 만난, 컴패션 어린이 마라새와 동생, 그리고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마라새의 엄마. [사진 허호]

 

 

 

2009년 태국으로 컴패션 어린이의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태국 북부의 중심도시 치앙마이에 있었는데, 수도 방콕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화면 속 방콕 거리는 불길이 번져 있었고,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아시아정상 회담마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려던 곳은 치앙마이에서도 훨씬 더 북쪽인 산간 지역으로 방향은 달랐지만,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가는 도로마저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다는 소식에 귀갓길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민하던 우리 마음에 왠지 더 특별한 어린이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예정대로 길을 떠났습니다.

  

시작부터 인상적이었던 그때의 촬영은 산간 지역 화전민 마을에서 마라새라는 한 소녀의 가족을 만나면서 더욱 특별해졌습니다.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이 어머니는 한센병을 앓고 있었는데, 아름다움의 대명사 오드리 헵번보다 제게 더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한센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 발가락은 뭉개져 있고 손가락도 한두 개는 떨어져 나갔다. 저 발과 손으로 거친 산비탈에서 가시투성이 나무에 달린 순을 따다 팔고 있다. 그것이 이 가정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이 중한 병마와 생활고도 이들의 미소를 빼앗지 못한 듯 보였다. [사진 허호]

 

 

   

한센병은 전염되지 않음에도 병을 앓는 당사자도, 주변에서도 접촉을 꺼리죠.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격리를 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마라새의 어머니는 그런 거리낌이 없이 우리를 편한 이웃처럼 맞아 주었습니다. 심리적으로 격리되지 않은 이분의 따뜻함에 마음이 정말 좋았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는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죠. 엄마와 나물을 따며 살림을 돕는 마라새는 장녀로서 역할을 꿋꿋이 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했고, 막내는 막내대로 당차면서도 씩씩한 모습이었습니다.

 

막내가 우리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뭔가를 외쳤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이라는 성경 구절 중 하나였습니다. 이 성경구가 동네가 보여주는 풍광과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요. 막내가 그 의미를 알고 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들 가족을 잘 대변해 주었습니다.

 

 

 

마라새 가족은 우리가 방문하기 일 년 전 가장을 잃었다. 이들이 나물과 나무 순을 뜯는 곳은 화전민이 산비탈에 불을 지른 곳이다. 불을 지르고 나면, 버섯이 새로 올라오는데, 마을 주민들은 버섯을 먹기도 하고 내다 팔기도 한다고. [사진 허호]

    

  

   

어머니와 마라새가 나물을 뜯어오는 곳은 화전민이 불을 질러 민둥산이 된 화전이었습니다. 등바구니를 지고 집 뒤쪽으로 난 산비탈을 올라가 보니, 평지가 나타났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평원이었습니다. 그곳에 커다란 붉은 색 나무 한 그루가 놓여 있고 고지가 높았는지 천지가 다 새파랬습니다. 날씨마저도 이들을 돕는 듯했습니다. 하늘의 푸르름을 들이킬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키가 작은 마라새가 나무순을 잘 딸 수 있도록 나뭇가지를 잡아주었을 때, 그때야 이들이 순을 따는 이 커다란 나무가 삐죽삐죽 솟아난 거센 가시로 덮여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금방 가시에 손을 찔리고 말았습니다. 마라새의 손도, 어머니의 손도 계속 찔리고 있었을 텐데, 이들은 찡그림 한 번 없이 나무 순을 땄습니다. 앙다문 입술이 서로에게,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마라새는 커다란 빨간 꽃을 따고 엄마와 장난을 쳤다. 정말 어여쁜 모습이었다. [사진 허호]

  

 

  

나물을 따오는 길이 고되었는지, 어머니는 시원하게 신발을 벗고 마루에 앉았습니다. 그 가녀린 품으로 두 딸이 포르르 달려와 꼭 안겼습니다. 그 햇볕 냄새 가득한 품을 엄마에게 안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요. 정말 포근하고 따사롭지요.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키게 되고, 절로 마음이 놓이지요.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요. 그저 하나님 안에서 단순하게 살라고, 진실되고, 선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죠. 저는 엄마의 착한 마음이 정말 좋아요.” 마라새가 말합니다.

  

갓 따온 나무 순과 야채의 싱그러운 냄새가 마당 앞까지 가득 채우는 오후였습니다.

  

 

 

  

  

 

 ▼원문 바로보기(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손·발 뭉개졌어도…오드리 헵번보다 아름다운 한센병 엄마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태국 북부 산간지역 깊숙이 화전민 마을로 들어가 만난, 컴패션 어린이 마라새와 동생, 그리고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마라새의 엄마. [사진 허호]

 

 

 

2009년 태국으로 컴패션 어린이의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태국 북부의 중심도시 치앙마이에 있었는데, 수도 방콕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화면 속 방콕 거리는 불길이 번져 있었고,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아시아정상 회담마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려던 곳은 치앙마이에서도 훨씬 더 북쪽인 산간 지역으로 방향은 달랐지만,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가는 도로마저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다는 소식에 귀갓길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민하던 우리 마음에 왠지 더 특별한 어린이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예정대로 길을 떠났습니다.

  

시작부터 인상적이었던 그때의 촬영은 산간 지역 화전민 마을에서 마라새라는 한 소녀의 가족을 만나면서 더욱 특별해졌습니다.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이 어머니는 한센병을 앓고 있었는데, 아름다움의 대명사 오드리 헵번보다 제게 더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한센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 발가락은 뭉개져 있고 손가락도 한두 개는 떨어져 나갔다. 저 발과 손으로 거친 산비탈에서 가시투성이 나무에 달린 순을 따다 팔고 있다. 그것이 이 가정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이 중한 병마와 생활고도 이들의 미소를 빼앗지 못한 듯 보였다. [사진 허호]

  

 

   

한센병은 전염되지 않음에도 병을 앓는 당사자도, 주변에서도 접촉을 꺼리죠.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격리를 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마라새의 어머니는 그런 거리낌이 없이 우리를 편한 이웃처럼 맞아 주었습니다. 심리적으로 격리되지 않은 이분의 따뜻함에 마음이 정말 좋았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는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죠. 엄마와 나물을 따며 살림을 돕는 마라새는 장녀로서 역할을 꿋꿋이 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했고, 막내는 막내대로 당차면서도 씩씩한 모습이었습니다.

 

막내가 우리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뭔가를 외쳤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이라는 성경 구절 중 하나였습니다. 이 성경구가 동네가 보여주는 풍광과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요. 막내가 그 의미를 알고 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들 가족을 잘 대변해 주었습니다.

 

 

  

    

마라새 가족은 우리가 방문하기 일 년 전 가장을 잃었다. 이들이 나물과 나무 순을 뜯는 곳은 화전민이 산비탈에 불을 지른 곳이다. 불을 지르고 나면, 버섯이 새로 올라오는데, 마을 주민들은 버섯을 먹기도 하고 내다 팔기도 한다고. [사진 허호]

  

 

   

어머니와 마라새가 나물을 뜯어오는 곳은 화전민이 불을 질러 민둥산이 된 화전이었습니다. 등바구니를 지고 집 뒤쪽으로 난 산비탈을 올라가 보니, 평지가 나타났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평원이었습니다. 그곳에 커다란 붉은 색 나무 한 그루가 놓여 있고 고지가 높았는지 천지가 다 새파랬습니다. 날씨마저도 이들을 돕는 듯했습니다. 하늘의 푸르름을 들이킬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키가 작은 마라새가 나무순을 잘 딸 수 있도록 나뭇가지를 잡아주었을 때, 그때야 이들이 순을 따는 이 커다란 나무가 삐죽삐죽 솟아난 거센 가시로 덮여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금방 가시에 손을 찔리고 말았습니다. 마라새의 손도, 어머니의 손도 계속 찔리고 있었을 텐데, 이들은 찡그림 한 번 없이 나무 순을 땄습니다. 앙다문 입술이 서로에게,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마라새는 커다란 빨간 꽃을 따고 엄마와 장난을 쳤다. 정말 어여쁜 모습이었다. [사진 허호]

  

 

  

나물을 따오는 길이 고되었는지, 어머니는 시원하게 신발을 벗고 마루에 앉았습니다. 그 가녀린 품으로 두 딸이 포르르 달려와 꼭 안겼습니다. 그 햇볕 냄새 가득한 품을 엄마에게 안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요. 정말 포근하고 따사롭지요.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키게 되고, 절로 마음이 놓이지요.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요. 그저 하나님 안에서 단순하게 살라고, 진실되고, 선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죠. 저는 엄마의 착한 마음이 정말 좋아요.” 마라새가 말합니다.

  

갓 따온 나무 순과 야채의 싱그러운 냄새가 마당 앞까지 가득 채우는 오후였습니다.

  

 

 

  

  

 

 ▼원문 바로보기(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손·발 뭉개졌어도…오드리 헵번보다 아름다운 한센병 엄마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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